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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딥 채널 프로젝트

시카고는 애초 습지 지대에 들어선 도시다. 아메리칸 원주민들만 시카고에 살았고 초기 유럽 탐험가들이 처음으로 현재의 시카고 지역에 도달했을 때 묘사한 기록을 보면 시카고 강이 미시간호수와 만나는 곳 인근에 정착촌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 인근이 모두 습지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마 그 곳에는 시카고를 뜻하는 인디언 말인 야생 양파가 가득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현재도 다운타운 지역 토양은 단단하지 못하고 매우 무른 상태다. 100년 전에 지어진 고층 건물이 이런 상황을 철저히 고려하지 못하고 하부를 단단히 만들지 않고 건물을 올렸기 때문에 기반이 침식되는 현상도 나타나기도 했을 정도다.     시카고를 포함한 일리노이와 중서부 대부분의 지역은 평지다. 흔히 말하는 대평원, 대초원은 말 그대로 편평한 정도가 매우 심심할 정도다. 시카고만 하더라도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의 차이가 크지 않다. 시카고의 평균 해발이 182미터로 측정되는데 가장 높은 곳이 205미터, 가장 낮은 곳이 176미터니까 채 30미터 차이가 나지 않는 셈이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동네가 편평하다는 뜻일 게다.   이런 곳에 살다 보니 폭우가 쏟아지면 배수가 원할하게 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높낮이의 차이가 있으면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에 배수가 비교적 원활할 텐데 시카고는 지형상 배수작용이 쉽지가 않다. 특히 지난 7월2일과 같이 하루에만 7인치 정도의 폭우가 짧은 시간 내에 쏟아지게 되면 여지없이 침수 피해가 발생하곤 한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는 낮은 곳으로, 일반적으로 보면 저소득층 주민들이 밀집한 곳으로 흘러가곤 한다. 그래서 시카고언들은 오래 전부터 딥 터널(Deep Tunnel)과 초대형 저수지를 통해 침수 피해를 막아보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들은 1800년대부터 건설하기 시작했던 운하, 강과 호수가 만나는 지점에 설치한 락(Lock)과 합쳐지면서 현재의 시카고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이전에는 시카고에서 비가 내리면 하수와 함께 빗물이 미시간호수로 흘러들어갔다. 하지만 상수원이기도 한 미시간호수에 오염된 하수와 빗물이 들어가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해 보고자 시카고 강이 미시간호수로 들어가지 않고 미시시피 강으로 빠질 수 있도록 운하를 건설했고 이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락을 설치했으며 오염되지 않은 상수원을 끌어오기 위해 호수 중심쪽으로 집수 시설을 마련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상에 딥 터널 프로젝트가 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시작해 38억달러라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만들었고 현재도 건설되고 있는 딥 터널은 쉽게 말해 배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시설이다. 공사 기간과 공사금액 등을 감안하면 토목 공사 중에서도 가히 최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지하 깊숙한 공간에 연결된 큰 터널을 만들고 이를 초대형 저수지와 연결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 프로젝트가 완전히 완성되면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을 경우에도 빗물이 강에서 범람하지 않도록 설계됐다. 침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시카고 사람들의 노력인 것이다.     이 프로젝트로 엘크 그로브와 맥쿡, 쏜튼 지역에 3개의 초대형 저수지가 1998년 이후 순차적으로 완공됐다. 이중 맥쿡 저수지의 경우 아직도 공사가 이어지고 있는데 현재 진행중인 공사로 담수 용량을 크게 늘리고 있는데 완공 예정인 2029년 이후로는 현재 용량 보다 3배가 커지게 된다.     하지만 이런 시카고언을 노력도 자연의 힘에는 때로 무력해지기도 한다. 지난 7월2일 폭우가 대표적이었다. 이날 기록적인 폭우로 딥 터널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시카고 남부와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저지대에 침수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점은 침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네이비피어에 있는 시카고 강과 미시간호수를 연결하는 락을 개방해 시카고 강에 가득찬 빗물을 미시간호수로 흘려 보냈다는 점이다.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물을 상수원에 유입시킨 셈인데 담당 부서인 상하수도국은 침수피해를 막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다고 해명했다. 또 왜 미리 락을 개방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냐는 비난에는 이전에 락을 개방했으면 수위가 맞지 않아 호수물이 강으로 역유입 되어 침수 피해가 더 심각해졌을 것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이런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저수지 용량 증설을 신속하게 완료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일반 가정에서도 빗물이 곧장 하수구로 빠지지 않고 잠시라도 가두어 뒀다가 배출할 수 있도록 하는 시설을 설치하는 것도 이러한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으로 제시됐다.     어쨌든 최근 눈에 띄게 늘어난 일리노이의 토네이도도 그렇고 시카고도 자연재해로부터 영원히 안전지대라는 믿음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   Nathan Park 기자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프로젝트 채널 터널 프로젝트 시카고 지역 시카고 사람들

2023-07-19

[시카고 사람들] 시카고 체육회 정강민 전 회장

“폭우 속에서도 춤출 수 있는 여유와 용기로 힘든 이민생활을 극복했다. 꿈과 희망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정강민(사진) 전 재미대한 시카고체육회장.   정 전 회장이 도미해 누님 가족이 살고 있는 시카고로 온 것은 지난 1981년 3월.   그의 이민생활 첫 직장은 시카고에서 한인이 경영하던 대형 그로서리 스토어로 “그 동안 시카고 동포사회에서 활동했던 많은 인물들이 거쳐간 추억이 있는 사업장”이라고 기억했다.   2년여를 일했던 그는 당시 대다수의 한인들이 비즈니스를 시작했던 플리마켓에 관심을 갖고, 주말과 평일 하루 문을 열며 주말장사를 주도하던 시카고 유명 플리마켓에서 자기 사업으로 의류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그는 “시카고 지역과 인디애나, 위스콘신 주 경계선 근처에 위치한 플리마켓에서 초창기 이민 동지들이 지금도 일하고 있다”며 “시카고 동포들의 이민 역사가 숨 쉬는 곳”이라고 말한다.   지난 1989년을 전후하여 동유럽에 불어 닥친 민주화의 영향으로 의류 중에 특별히 Jean(청바지) 종류는 인기가 좋아 폴란드, 루마니아계 손님 등이 판매대 주위로 겹겹이 에워싸며 물건을 사 갈 정도로 불티나게 팔리면서 경기가 좋았다고 회상했다. 옷이 다 팔린 빈 판매대에 중고 소잉머신을 올려 놓았더니 그것도 바로 팔리던 시절이다.     그는 “이민 선배들이 말하던 ‘한국의 서울 명동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비즈니스 호황을 실감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지난 1995년 비즈니스(LA Fashion Mart)를 시카고 벨몬트 길에 오픈하고 2003년에는 리스로 있던 2만 스퀘어피트 규모의 빌딩을 구입했다. 이제는 지역적인 장사에서 벗어나 인디애나, 위스콘신 등 타 주에서 고객들이 찾아오는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제28대 시카고 한인회 총무이사를 역임한 그는 제19대 재미대한 시카고체육회장을 맡아 지난 2013년 6월 시카고 선수단 175명을 이끌고 ‘제17회 캔사스 미주체전’에 참가해 총 48개의 메달을 획득하며 시카고팀 최초 종합우승의 영광을 달성하는데 기여했다.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한 그는 현재 시카고에 거주하며 아내와의 사이에 두 아들(라이언, 오스카)을 두고 있다. 박우성 위원시카고 사람들 시카고 체육회 시카고 한인회 시카고 지역 시카고팀 최초

2023-02-24

[시카고 사람들] 시카고포럼 비전커미티 조원장 대표

‘시카고포럼’의 미래를 이끌어 갈 차세대 젊은 리더들의 모임인 Vision Committee 조원장(41⋅사진) 대표.   조 대표는 “한국문화, 한국역사에 관심 있는 한인 1.5∼2세들이 모여 네트워킹을 공유하고, ‘독도동해지키기세계본부’를 후원하며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한다는 목적과 취지에 크게 공감해 10년 이상 ‘시카고포럼’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라는 특별한 분야의 사업을 하는 ‘WJ Sports’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미국 시애틀, 에콰도르, 칠레, 가나, 스페인 등 각 국에서 3년 정도씩 살아 본 독특하고 색다른 경험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국제화⋅세계화를 몸소 체험한 다채로운 이력을 갖게 된 배경은 그의 부친이 대한민국 외교관 출신의 조용하 전 주 칠레 대사.   칠레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난 2001년 미국에 유학 온 그는 인디애나대학에서 학사, 노스웨스턴대학에서 석사(경영정보시스템/MIS)를 마치고 지난 2008년 시카고에 있는 미국 엔지니어링회사에 첫 직장을 구했다.   어려서부터 시작한 골프를 즐기던 그가 실내 골프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고 지난2019년 5월 한국을 방문해 실내 골프 사업 관계자들을 만났다.   그는 “IT 강국의 최고 기술을 미국에 가지고 와서 ‘기회의 땅’에서 한 번 제대로 해보겠다는 신념으로 과감하게 사업을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사업 파트너(정집석)와 지난 2020년 3월 버팔로 그로브에 1호점 ‘WJ Golf’를 오픈 했으나, 다음날 코로나 팬데믹으로 ‘셧 다운’ 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3개월 후 다시 오픈 했을 때 일반 골프장이 닫혀 있어 오히려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킹이 이어졌다는 그는 비즈니스가 다시 살아나는 전화위복을 실감했다고 기억했다.   지난 2020년 겨울 레이크 쥬리에 2호점을 오픈, 그의 비즈니스는 선풍적 인기를 끌며 2022년 6월에는 버팔로 그로브 소재 Arboretum Golf Club, 골프장 내에 3호점을 열었다.   그는 “앞으로 비즈니스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에 진출하고 싶은 한국 중소기업들을 돕고 한국의 뛰어난 기술들을 가지고 와 소개하고, 남미 등 다른 나라에도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펼쳐 보고 싶다”며 “인도어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파이오니아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북서 서버브 버팔로 그로브에 거주하며 아내와의 사이에 1남을 두고 있다.  박우성 위원시카고 사람들 시카고포럼 조원장 조원장 대표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실내 비즈니스

2023-02-17

[시카고 사람들] 코리안퓨전식당 ‘아지텐’ 황옥연 사장

‘맛있게, 정직하게, 착한 가격으로 정성을 다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몰튼 그로브 뎀스터 길에서 코리안 퓨전식당 ‘아지텐’을 운영하고 있는 황옥연(57⋅사진) 사장.   지난 2021년 11월 일식당 셰프 경력 10여 년이 훌쩍 넘은 큰 아들(효빈)과 함께 비즈니스를 오픈 한 황 사장은 “이제는 투고(To Go), 도시락 사업, 무료 배달 서비스에 더욱 집중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황 사장은 지난 2004년 12월 도미해 친구들이 모여 살고 있는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학업으로 시카고에 온 큰 아들을 따라 그가 시카고에 온 것은 지난 2014년 4월.   한국에서 일찍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 양재 미싱 기술을 배웠던 그는 서울 장위동에서 유명 의류회사의 하청업체로 의류제품공장을 운영한 사업 경력도 갖고 있다.   주위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그의 미싱 기술이면 충분하다고 미국 생활에 용기를 줬다며, 얼터레이션(alteration) 비즈니스는 이미 정해져 있던 직종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그의 초창기 이민 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운전을 꼭 해야 하는 상황에서 서투른 운전 실력으로 보험회사에서 쫓겨 나고, 비즈니스 사기를 당하는 등 어려운 시간을 겪으며 자신감을 잃기도 했다.   자녀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려 오는 길에서 보내는 시간 외에는 세탁소 업주들이 맡긴 얼터레이션 일감을 처리하기 위해 하루 2∼3시간을 자면서, 수 없이 많은 날밤을 새우면서 신용을 쌓았다.   그는 “오직 자녀들을 위해 열심히 살겠다는 엄마의 마음과 강한 다짐이 힘든 이민생활을 극복하는 원동력이었다”며 “부족한 엄마를 위해 어려운 환경에서도 가족들의 가장 노릇을 해 온 큰 아들이 자랑스럽고,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얼터레이션 기술이 좋다고 손님들이 손님을 연결해주고, 소개해주고 신뢰를 보여주는 고객들이 무척 감사하다는 그는 보수적이고 정이 넘치는 시카고 한인 사회를 실감한다고 전했다.   시야에 장애물 없이 탁 트인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쾌적함, 맑은 공기를 즐길 수 있는 상쾌함이 있는 시카고가 진짜 좋다는 그는 네이퍼빌에 거주하며 슬하에 2남 1녀(지혜, 효빈, 지빈)를 두고 있다.     박우성 위원시카고 사람들 코리안퓨전식당 황옥연 황옥연 사장 시카고 한인 비즈니스 사기

2023-02-10

[시카고 사람들] 시카고 한인산악회 박영남 전 회장

“건강 관리를 하면서 지금 세계일주용으로 캠퍼 밴을 조금씩 꾸미고 있다”고 말하는 시카고 한인 산악회 박영남(71, 사진) 전 회장.   박 전 회장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아름다운 세상을 그냥 거기에 있으라고 만들어 놓으셨을까요?”라고 반문하면서 “만물과 생명들을 우리 인간에게 선물로 주셨으니 보고 즐기고 감사하며 느끼기 위한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그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산이 좋아 빙벽도 타는 산악 등반, 심장 박동 소리를 들려 주는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모터사이클링, 예전에는 직장 동료들과 꾸준한 골프 아웃팅, 각종 세계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달리기 운동, 겨울엔 스노우보딩 등 다양한 스포츠와 활동을 즐기는 시카고 한인사회에 몇 안 되는 액티브 맨이다.   박 전 회장이 미국에 온 것은 지난 1975년 2월. 누님 가족이 있는 아이오와주 북동부 미시시피강 근처 목장에서 일한 것이 이민 생활의 첫 직장이었다.   미국에서 목장을 경영하는 것이 아시안 이민자에게는 여러 분야에서 어렵다는 생각에 이민 가방을 싣고 추운 겨울 오토바이를 타고 시카고에 입성한 것은 지난 1976년 1월.   시카고서 신문배달, 개스스테이션, 공장, 메캐닉 등 각종 일을 하며 하루 3~4시간을 자고 쓰리잡을 뛰며 열심히 진짜 이민 생활을 경험했다고 회상한다.   전자공학을 전공했던 그는 한국에 나가 여자 친구(아내)와 결혼을 하고 시카고로 돌아와 마침내 IBM에 입사해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TRW, Storage Tech 등 다른 회사로 스카우트 되며 미국 기업에서 인정을 받고 지역본부장까지 승진하며 25년을 근무했다.   그는 미국인에게 오직 지지 않겠다는 승부 근성으로 도전하며 경쟁이 심한 컴퓨터 산업 분야에서 한인의 자긍심을 지켜나가겠다는 각오로 일했다고 기억했다.   지난 2005년 자신의 비즈니스를 해보겠다며 세탁공장을 운영하고, 얼마 전까지 코인 런드리 사업을 하면서 그는 스몰 비즈니스를 경영하는 한인들의 부지런함과 근면함이 존경스럽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많은 곳을 다녔지만 시카고에 살아 보니 4계절이 있고 맑은 공기에 맑은 물이 있어 깨끗한 생활 환경이 좋다고 강조한다.   힘들었던 이민 생활을 극복해 나가며 생긴 그의 철학은 “내일은 불확실하지만 삶 속에서 사랑하고 기뻐하고 즐기며 오늘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매일 아침 격일제로 7마일을 뛰고 상체 운동도 하며 건강을 관리한다는 그는 아내(박기임)와의 슬하에 모두 출가한 1남1녀(폴⋅그레이스)를 두고 있다.   그는 교회에서 아름다운 신앙인들을 만나며 하나님 앞에 평생 미운 짓 많이 했으니 조금이라도 빚 청산을 해야겠다는 믿음으로 링컨우드 소재 베다니 장로교회에 출석하며 시무장로로 헌신하고 있다.     박우성 위원시카고 사람들 한인산악회 시카고 시카고 한인사회 이민 생활 직장 생활

2023-02-03

[시카고 사람들] J&H T-Shirts World 이흥렬 대표

지난 1988년 10월 도미해 20년을 플로리다에서 살던 J&H T-Shirts World 이흥렬(61⋅사진) 대표가 누님 가족이 있는 시카고로 온 것은 2008년 12월.    시카고에 와서 오래 전부터 해 왔던 전문 분야의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으로 서버브 스코키 소재 자수공장을 인수해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 경기가 좋았던 플리마켓 중심으로 엠브로이드 자수 비즈니스가 잘 되면서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한인들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경기 불황을 겪으면서 거래처로부터의 수금이 지연되고 원자재를 가져간 상대가 사고를 내는, 사기를 당하며 그도 비즈니스에 고비를 맞았다.   공장과 교회만 오고 가는 것을 반복하며 열심히 사업에 매진했지만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그는 잠시 직장 생활을 하며 비즈니스를 지켜 나갔다.   주위 사람들과 업계에 신뢰와 신용을 쌓으며 7년 쯤 지나자 사업 환경에 조금씩 변화를 보이고 단골손님, 후원고객들이 생겨 나며 비즈니스도 안정을 찾게 됐다.   와중에 조금씩 꾸준히 일거리를 맡기던 한 유태계 노인의 후원에 힘입어 병원, 널싱홈 등의 주문 물량이 늘어나면서 사업이 큰 성장을 이루게 됐다.   그는 “개인적으로 ‘한 사람과의 만남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삶의 철학을 절실히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비즈니스를 통해 신앙적으로 한 사람과의 만남이 인류를 구원하는 소중한 축복의 만남,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깨닫게 해 줬다고 강조했다.   그는 타 민족 커뮤니티를 보면 자녀들이 부모 세대의 사업을 이어 받아 더욱 발전시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동포사회는 물려 줄 세대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맥을 이어갈 수 있는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사업체, 교회, 단체 등 맥이 끊겨 가는 한인사회의 분위기를 아쉬워했다.   오랜 시간을 타 주에서 보냈던 그는 “시카고 한인사회는 진짜 보수적이다. 초창기 시카고 생활에 정착해 가는 동안에 텃세가 심했다”고 회상했다.   서울 출생으로 건국대를 졸업한 그는 건강 관리를 위해 골프를 즐긴다며 “시카고의 4계절이 좋고 한국 같은 날씨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박우성 위원시카고 사람들 shirts 이흥렬 shirts world 시카고 한인사회 사업체 교회

2023-01-27

[시카고 사람들] 재미대한 시카고검도회 안준성 전 회장

“검도장을 운영하면서 검도 지도자로서 배우는 아이들에게 ‘검도’라는 ‘무도’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검도를 통해 예절, 존중, 신의 등 올바른 인성을 형성할 수 있도록 지도해 왔다.”   안준성(59∙사진) 전 재미대한 시카고검도회장은 “검도관 운영은 교육 사업이라고 생각하며 검도를 보급하는 교육자의 자세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선수들을 육성해 왔다”며 “한인 청소년들에게 검도를 가르치며 미국에서 인종차별, 정체성 부족 등으로 겪는 어려움을 상담하면서 검도 수련을 통해 강하게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 볼 때 소중한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대한검도회 공인 7단으로 어느덧 검을 잡고 검도인으로 지낸 세월이 43년.   검도 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선수 생활을 하며 쌓아 온 검도 경력은 미국에 오기 전까지 서울시 구로구 오류동에 위치한 유한검도관을 운영했으며 서울시 검도도장협의회 총무로도 활동했다.   검도 세미나를 위해 시카고를 방문한 적이 있는 그가 미국에서 검도 도장을 운영해 보겠다는 포부를 갖고 처가 식구가 살고 있는 시카고로 온 것이 지난 2000년9월.   UIC에서 영어를 배우며 미국 생활을 시작한 그는 지난 2001년 시카고지역 파크 디스트릭에 장소를 마련하고 검도장 일맥관을 오픈해 검도 클래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2001년 당시 휴스턴에서 개최하는 제11회 전미주 한인체전에 검도 종목이 처음으로 채택되면서 검도 활성화에 좋은 기회가 찾아 왔다. 시카고 체육회 가맹 경기단체로 시카고 검도협회가 창설되고 그는 부회장으로 휴스턴 체전에 출전하는 시카고 대표 선수단의 초대감독을 맡았다.     이후 시카고 선수단의 검도 감독을 맡고 있으며, 검도협회 회장으로 봉사했다. 검도장 일맥관은 지난 2008년부터 서버브 지역 윌링으로 옮겨 운영했다.   서울 출생으로 세종대(체육학과)를 졸업한 그는 학사장교 9기 출신으로 육군 대위로 예편했다.   지난 2006년부터 참여하고 있는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미 중서부지회 사무처장 겸 육군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동포 사회의 고령화 현상으로 한인 단체의 세대 교체에 심각성이 나타나고 있다”며 “젊은 향군의 발굴과 참여 유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서버브 글렌뷰에 거주하며 아내(안금복)와 슬하에 아들(의정)과 쌍둥이 딸(예지, 예솔)을 두고 있으며, 마운트 프로스펙트에 위치한 순복음 시카고교회에 시무장로로 헌신하고 있다.   그는 “공기 좋고 뚜렷한 사계절이 있어 시카고가 좋다”며 “한인사회 분위기가 보수적 성향이 강한 느낌이 있지만, 다른 지역보다 확실히 인심이 좋고, 정이 넘치는 커뮤니티”라고 강조했다.  박우성 위원시카고 사람들 시카고검도회 재미대 시카고 검도협회 검도협회 회장 시카고지역 파크

2023-01-20

[시카고 사람들] 일리노이 한인세탁협회 김동철 회장

감수성이 예민하던 고교 1학년, 외가 친척들이 살고 있던 미국으로 가족 이민을 온 일리노이 한인세탁협회 김동철(54⋅사진)회장이 시카고에 도착한 것은 지난 1985년 8월이다.    집안 식구들을 위해 일찍부터 생활전선에 뛰어 들었던 그는 언어문제, 인종차별, 학교생활 등 초창기 이민생활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다고 기억했다.   세탁소에서 일을 배웠던 그는 21살 젊은 나이에 세탁소를 오픈, 첫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너무 젊은 고용주로서 나이가 어리니까 나이 드신 직원들과의 관계가 무척 힘들었다”며 “홀세일을 하는데도 어리다는 이유로 소매 상인들에게 신용과 믿음을 주기가 쉽지 않았다. 비즈니스에 대한 경험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결국 첫 사업을 실패한 그는 세탁공장의 운영과 세탁기술을 다시 배우며 다른 비즈니스와 비교해 좀 더 비전이 있다고 판단한 세탁업에 재도전을 준비했다.   그는 당시 세탁업계는 나쁘지 않은 사업 환경으로 리테일 분야의 유행과 스타일이 없고, 재고 문제가 없고, 노동과 투자의 댓가가 따라 오며, 비즈니스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안정적으로 운영해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힘든 시간을 이겨 내고 그는 지난 1995년 세탁공장을 올랜드파크에 다시 오픈했다.   일리노이 한인세탁협회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그는 “선배들이 끌어 주고 후배들이 도와 주고 친구들이 함께 하는 자랑스런 단체”라며 “특별히 임원⋅이사진이 오랜 시간 끈끈한 정과 의리로 뭉쳐 서로 의지하는 가족 같은, 형제 같은 협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민 생활이 힘들 때 마음의 위로를 받으며, 형님 같은 선배들이 조언을 주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줬다며 동고동락해 온 세탁협회 선후배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한인 세탁인들을 위해 앞으로 협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시장에서 살아 남기 위해 세탁업계는 향후 가격 인상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켜야 하는데 세탁 기술의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어떻게 변화에 적응해 나가야 하는지 환경법에 끌려 다니지 않고 능동적으로 대처해 퍽 사용보다 케미컬이 아닌 웻 클리닝(물빨래)으로 처리하면 건강을 해치지 않고 경비면에서도 이점이 있다고 제안했다.   지난 2020년 세탁협회장을 맡은 그는 뱅큇을 예약하고 광고를 내보내며 취임식을 준비하던 중 코로나 팬데믹으로 행사를 치르지 못했다.   협회를 위해 회장직을 연임하고 있는 그는 한 다리 건너면 서로가 다 아는 시카고 동포사회의 대표적 특징에 대해 다른 지역보다 확실히 정이 넘치고 골프를 즐기는 동호회가 많은 건강한 커뮤니티라고 말한다.   뚜렷한 4계절이 있어 시카고가 좋다는 그는 서울 출생으로 올랜드파크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다. 아내(최윤희)와 슬하에 1남2녀(에릭, 에밀리, 엘라)를 두고 있다. 박우성 위원시카고 사람들 한인세탁협회 일리노이 일리노이 한인세탁협회 세탁협회 선후배들 초창기 이민생활

2023-01-13

[시카고 사람들] ‘한인 운수업상조회’ 송무성 회장

파라과이에서의 10년 이민 생활 후 도미해 현재는 시카고지역 ‘한인 운수업상조회’ 회장을 맡고 있는 송무성(62⋅사진) 씨가 시카고에 정착한 것은 지난 1995년 4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던 그는 당시 시카고 한인타운 로렌스 길에 위치한 전자제품 도매상에 전자 수리를 담당하는 엔지니어 기술자로 취직했다. 그리고 2년 후 비즈니스를 인수해 직접 경영을 했다.   주위에 택시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지난 2000년 택시 기사 서비스업으로 일을 시작했던 그는 지난 2004년 전자제품 도매업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택시 운수업에 뛰어들었다. 뉴욕, 시카고 등 미국 대도시에서 ‘메달리온’이라 불리는 택시 면허권의 가격이 오르면서 비즈니스 붐이 일기도 했다.   교회 생활에 열심이었던 그는 “수입도 괜찮고 개인 시간을 낼 수 있는 자유업으로 인기가 있었다”며 “직업 선택도 교회 중심적으로 금요, 주일예배를 빠지지 않고 참석할 수 있어 내게는 교회 봉사에 적합한 좋은 일거리였다”고 말했다.   그는 “9.11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경기가 좋아서 할로윈데이 같은 특별한 날에는 집에 돌아가기 힘들 정도로 골목마다 손님들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택시 운수업을 시작할 때부터 시카고와 서버브 지역의 ‘한인 운수업상조회’에 가입해 활동했던 그는 10년 전부터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가입 회원이 200여명이 될 정도로 성장했던 상조회는 매년 성대한 연말파티를 개최하며 친목과 단합을 과시했었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는 40~5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택시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하며 잦은 고장의 미터기 작동, 이미션 테스트의 시그널 작동 등을 고쳐 주고, 택시 운영에 관한 제반적인 문제들을 의논하고 함께 해결해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회 봉사를 통해 ‘섬김’의 자세로 단체를 바르게 운영하는 법을 배웠다는 그는 역사 속에 기독교 성지, 최고의 복음전도자 무디의 부흥 운동 중심지, 시카고에 사는 것을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맑은 공기에 맑은 물이 풍족한 시카고. 그는 예전에 가 보았던 터키, 그리스 성지 순례에서 물 귀한 것을 깨닫고 체험하며 시카고에 더욱 각별한 애정을 갖는다고 밝혔다.   서울 출신으로 프로스펙트 하이츠 소재 헤브론교회에 출석하며 시무장로로 헌신하고 있다. 팰레타인에 거주하며, 아내(송혜정)와 슬하에 1남2녀(보배, 승협, 진주)를 두고 있다.   박우성 위원시카고 사람들 운수업상조회 송무성 한인 운수업상조회 택시 비즈니스 택시 운수업

2023-01-06

[시카고 사람들] ‘Oh Happy Day’ 김지영 대표

개량한복, 전통한복의 대여, 돌잔치, 팔순잔치의 상차림, 결혼식 폐백행사의 세팅과 진행 등 전통문화 비즈니스를 통해 한국문화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Oh Happy Day’의 김지영 대표(38⋅사진).   한국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직장 생활을 하던 그가 시카고에 온 것은 지난 2016년 2월이다.   대형 몰 안에 있는 소매가게에서 일하던 초기 이민생활이 쉽지 않았지만 세일즈 마케팅, 물품 정리 등 비즈니스를 철저히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어느 날 친구 자녀의 돌잔치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이런 행사를 전문적으로 정성을 다해 도와 준다면 모두가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 이름 ‘오 해피 데이’(Oh Happy Day)를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며 그는 소중한 행사를 통해 행복하고 좋은 날을 만들어준다는 사명감을 갖고 지난 2018년 1월 사업을 론칭했다.   물론 비즈니스도 생각했지만 한국인으로서 우수한 한국 전통문화를 올바르고 정확하게 알리고 싶은 포부도 컸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좋은 반응을 얻으며 고객 유치가 상승곡선을 이어가던 중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었다. 그는 “팬데믹 중 결혼식은 미루는 일이 많았지만 백일잔치, 돌잔치는 연기 없이 진행되는 특징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또한 타 주에서 온라인 고객이 늘어나며 오히려 미 전역을 대상으로 배송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잔치상 등을 세팅해 타주 고객에게 보내 주면 종종 도난이나 분실을 당하는 경우가 있어 고스란히 손해와 피해를 감수하기도 했다. 그는 “팬데믹 이후 손님들이 미뤄왔던 웨딩, 폐백 행사가 늘어나면서 하루에 5건의 폐백을 치른 적도 있다”며 “동포 2세들에게 특히 결혼식 폐백 행사는 굉장히 인기 있는 풍속이 되어 가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에 대한 것들을 궁금해 하는 동포 2세, 한인과 결혼한 외국인 배우자, 입양인, 타 민족 미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는 그는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전통 매듭, 전통 의식 등 클래스를 개설해 적극 다가가서 문화사절단의 역할을 하며 K문화를 더 널리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마운트 프로스펙트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경기도 파주 출신으로 국민대(디자인학 전공)를 졸업했다. 시카고 생활에 대해 “LA, 뉴욕도 가 보았지만 왠지 실망스러운 부문이 있는 반면 시카고는 첫 인상이 깔끔하고 평온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우성 위원시카고 사람들 김지영 happy 김지영 대표 전통문화 비즈니스 한국 전통문화

2022-12-23

[시카고 사람들] 전도자 강현 선교사

“예수에 빠져 살면 세상에 걱정이 없다”고 설파하는 강현 선교사(60, 사진).    그리스도인으로 27년간 노방전도를 하며, 평신도 선교사가 돼 새해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그가 가족 초청으로 시카고에 온 것은 지난 1989년 12월.   동네 앞 피자가게서 3주 동안 접시닦이로 시작한 그의 이민 생활은 스피커를 만드는 일본 회사 공장을 거쳐, 1년 후 시카고에 위치한 한인 라디오방송국에서 아나운서 겸 기자로도 근무했다.   시카고 동포사회가 성장하며 방송 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커가던 시절로 그의 방송 활동과 정오 뉴스는 커뮤니티에 꽤 인기와 영향력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방송 대부분이 라이브 위주로 진행되고 특히 뉴스는 생방송이었기에 항상 긴장해야 하는 생활이었지만 방송 활동은 한인사회를 알게 하고 많은 동포들을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1994년 식품도매회사에서 일할 기회를 만나, 주말을 반납하고 열심히 일했다. 뛰어난 영업 실적으로 중서부에 들어 오는 한국 대표 식품회사들과 연결돼 서울푸드, CJ푸드, 오뚜기식품 등서 초창기 지역책임자를 맡으며 15년을 종사했다.   잦은 항공편 출장을 제외하고도 자동차 운전으로 80만마일을 넘게 중서부 지역을 다녔다고 한다.   변화하는 시장과 업계 사정으로 2008년 요식업으로 옮겨 일식당을 경영했다.   버팔로 그로브 소재 일본 식당을 운영하면서 단골 고객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크리스천으로서 술을 팔지 않았다. 주위에서 비즈니스가 곧 망한다고 걱정했지만 젓가락과 영수증에 요한복음 3장16절 말씀을 영어로 인쇄해 전도하겠다는 그의 신앙적 열정은 모두의 예상을 빗나가게 했다. 오히려 그가 개발한 십자가 모양의 ‘부활롤 마끼’는 인기를 얻으며 유명세를 탔다.   올해 한국선교기관의 미주 파송 선교사로 임명을 받아 열심히 전도 집회를 다니고 있는 그는 “최근 ‘성경적인 전도법’ 책자를 제작해 초판을 발행하고 개인적 신앙 간증 책의 집필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소개했다.   중서부지역 곳곳을 다녔던 그는 시카고는 너무 살기 좋은 곳이라고 단언한다.   “어느 도시보다도 시카고 다운타운의 분위기와 전경은 최고”라며 “운동하기 좋고, 투어하기 좋고, 생활하기 좋은 도시가 시카고”라고 강조했다.   경상북도 왜관 출신으로 중1때부터 서울에서 성장한 그는 한국외국어대학교(화학 전공)를 졸업했다. 슬하에 간호학을 공부하고 있는 외동딸(제니)을 두고 있으며 아내와 샴버그에 거주하고 있다.  박우성 위원시카고 사람들 전도자 선교사 강현 선교사 평신도 선교사 시카고 동포사회

2022-12-16

[시카고 사람들] 서로돕기센터 원장 김회연 목사

“타 지역에 사는 주위 분들에게 가는 곳마다 시카고를 내세우는 시카고 목사라는 소문이 나 있을 정도입니다.”    시카고 예찬론자라고 자부하는 시카고한인 서로돕기센터 원장 김회연 목사(63∙사진)는 “목회 일로 미국 각 지역을 방문할 기회를 자주 갖는데 어느 자리에서나 정말 아름다운 도시, 시카고를 자랑한다”고 말한다.   그는 “예전에 시카고 업 타운에서 드롭 오프를 운영하던 아내의 비즈니스를 도와 주러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를 따라 운전을 하면서 시카고 마천루와 어우러진 미시간 호수의 아름다운 절경을 볼 때마다 매 순간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대륙 중심에 있어 위치적 혜택도 보는 시카고가 타 도시보다 주류사회나 한인사회가 보수적인 분위기가 있어 이민자들의 정착에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전에 위치한 한남대학교(경제학 전공)를 졸업하고 지난 1989년 미국 버지니아 주 킹칼리지로 유학 온 그가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시카고로 온 것이 1993년.   목회자의 사명을 결단한 후 전공을 바꿔 맥코믹신학대학원(목회학 전공)과 노스팍대학교(기독교교육학 전공)에서 공부를 마치고 1998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미주 한인 이민자들의 아름다운 삶의 의미를 신앙적으로 조명해 보며 복음 전도의 큰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매주 5일간 90분씩 방송하는 미주기독교TV 방송국장을 맡아 3년 넘게 열정적으로 선교 방송에 헌신했다.   이후 2003년부터 드림교회를 개척해 목회 활동을 해 왔다.   지난 2020년부터 서로돕기센터 원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그는 센터를 맡아 달라는 권유가 있을 때, 너무 마음에 와 닿는 ‘서로 돕기’라는 단체명이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회상했다.   서버브로 많은 한인이 이주했지만 시카고 로렌스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센터 이용자의 65% 이상이 한인이라고 전했다.   그는 “지난 팬데믹 동안 백신 서비스를 초창기에 시작할 수 있게 되자 서비스를 받은 이용자들이 감동을 받고 우는 분도 계셨다”며 “음식을 사 오고 헌금을 해 주고 모두가 감사를 전해 줄 때 봉사자로서 진정한 보람을 느끼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고 기억했다.   회사를 다니며 무급 봉사직으로 헌신하고 있는 그는 “지난 8월 갈라 행사에 한인사회가 보내준 뜨거운 성원과 호응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그는 충남 부여 출신으로 ‘시 쓰는 사모’로 시카고 문인회장을 역임한 아내 김영숙씨 사이에 1남(강산)1녀(하늘)를 두고 있다.  박우성 위원시카고 사람들 서로돕기센터 김회연 시카고한인 서로돕기센터 서로돕기센터 원장 김회연 목사

2022-12-09

[시카고 사람들] 센트럴 미시간대학생 이지연

어렸을 적 대형 전광판 광고를 보고 디자인을 배우고 싶다고 느낀 소녀는 지금 디자인을 통해 소통하고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작년 여름(6월) 유학 차 처음 미국으로 건너 온 이지연(24)씨는 센트럴 미시간 대학에 재학 중이다.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는 그는 디자인이 사람들 사이 소통의 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꿈을 안고 있다.   이 씨는 "디자인은 소리나 별도의 설명 없이 그냥 이미지, 색, 또는 문구만으로 사람들에게 그 이상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며 디자인은 단순 미(美)학이 아닌 커뮤니케이션의 일부”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모든 것이 원격 및 재택으로 변환됐을 때 사람들이 대면 대화 부족으로 마음을 앓는 것을 보고 말 없는 소통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10년 안에 또 다른 팬데믹이나 자연재해가 아니더라도 계속되는 소통 부족으로 많은 사람들의 정신 건강이 악화될 수 있다"며 "디자인이 이 문제를 극복하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디자인을 구성할 수 있는 수많은 색들이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색채 치료란 각각의 색깔이 가진 고유의 파장과 에너지를 통해 신체와 마음을 치료하는 방법이다"고 설명했다.     색채 치료는 현대의학의 일부는 아니지만 환자가 질병으로 인한 힘든 상황을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보조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씨는 언젠가 사람들이 매달 본인 정신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컬러키트(Color Kit)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는 아직 완벽하지 않은 영어를 비롯 부모님과 7살 터울의 오빠와 떨어져 미국에서 혼자 지내는 게 때로는 힘들지만 미국에서 공부를 하며 배우고 느끼는 점이 많다고 한다.   그는 미국과 한국 대학 교육의 차이점에 대해 능동적인 부분과 수동적인 부분을 꼽았다. 그는 "한국에서 다닌 학교에도 뛰어난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많았지만, 아이디어와 생각을 직접 말하거나 표현할 기회가 부족했다"며 "하지만 지금 학교에서는 발표할 기회도 많고 다른 학생들의 생각도 들을 기회가 정말 많다"고 밝혔디.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각자만의 다른 생각, 시각, 선호도 등을 듣다 보니 다양성을 배우게 됐다"며 이를 유학 생활을 통해 얻은 매우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2022 킴보장학생 수상자인 그는 "한 때는 꿈을 단순한 직업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꿈이란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디자인을 통해 행복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부연했다.  Kevin Rho 기자시카고 사람들 미시간대학생 센트럴 센트럴 미시간대학생 그래픽 디자인 생각 시각

2022-11-25

[시카고 사람들] 이북도민회 안완호 사무총장

양친 모두 이북 함경도 출신으로 선배의 권유로 미 중서부 함경도민회에 이어 미 중서부 이북도민회연합회에도 참여하고 있는 안완호(64∙사진) 사무총장.       안 총장은 “도민회에 참석하면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난다”며 “회원들을 위해 일할 때 부모님 생각으로 더욱 정성을 다해 봉사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부친으로부터 흥남 철수 작전 시기에 동네 주민들을 모시고 나오는 일을 했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고 전했다.   성균관대(기계공학 전공)를 졸업하고 현대자동차 마북리연구소에서 자동차 연구원으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한국GM에서 연구개발원으로 일했다. 그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디젤과 개솔린 엔진 연구를 경험해 본 소수의 자동차 전자제어 1세대 연구기술자”라고 설명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 런던에 위치한 포드 자동차공장에서 2001년부터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그가 Navistar디젤자동차 회사로 스카우트 돼 시카고로 온 것이 지난 2005년 3월. 그는 “자동차 디젤 엔진의 중심지가 시카고”라며 “전국적인 디젤 엔진 매뉴팩처 기업들이 시카고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기술적인 갈등과 한계를 느끼다가 미국에 와서 일하면서 많은 자료를 얻고 배우며, 개인적으로 기술적인 발전을 가져올 때 큰 보람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자동차 엔진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현지 시험’으로 여름에는 가장 더운 곳에서, 겨울에는 가장 추운 곳에서, 산악 지역 가장 높은 곳에서 엔진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미국 전역을 두루 다녀 볼 기회가 있었다고 기억했다.   “시카고는 안정적이며 굉장히 자연이 잘 보호되어 있는 큰 도시인 데다 편안함이 있는 살기 좋은 곳으로 한인 커뮤니티도 구성이 잘 되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10년부터 아내와 텃밭 가꾸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며, 고춧가루의 자급 자족은 물론 한 해에 호박은 300개 정도, 최근에는 배추 100포기, 무우 100개를 수확해 올해 김장은 이미 마쳤다고 말했다.   자전거타기, 달리기, 걷기 운동 등 아내(이미옥)와 함께 유산소 운동을 열심히 즐기며 건강 관리를 하고 있다는 안 사무총장은 강원도 속초 출신으로 현재 서버브 네이퍼빌에 거주하며 외아들(형식)을 두고 있다 박우성 위원시카고 사람들 이북도민회 사무총장 중서부 이북도민회연합회 navistar디젤자동차 회사 자동차 엔진

2022-11-18

[시카고 사람들] CDS크레딧카드 김영산 시카고 지점장

“시카고에는 바다 같은 미시간 호수가 있다”며 시카고 예찬론을 펼치는 CDS크레딧카드 김영산(66〮사진) 시카고 지점장.     존 핸콕 타워에 올라 가 시카고 야경을 보며 현대 건축의 본산 시카고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는 그는 처음 왔을 때는 시카고의 겨울이 몹시 춥고 눈도 많이 온다고 느꼈는데, 기후 변화 때문인지 아니면 익숙해져서 그런지 이제는 날씨와 자연 환경, 모든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이민 생활이 언어의 불편함이나 문화 차이의 서투른 점도 있지만 형식이나 체면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혜택과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 대기업 계열사의 인천지역 신용협동조합에서 20여 년간 근무하며 실무 책임자로 독일, 프랑스 등 유럽과 동남아로 외국 연수를 자주 나갔던 그가 시카고로 온 것은 지난 2000년 7월.   시카고 첫 직장은 한인 신문사 광고국으로 많은 한인들을 만나며 동포사회를 알고 대인 관계를 넓혀 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한인 사회 경기는 물론 미국 경제도 좋았던 시절로 회사에 신의를 지키고 성실히 근무했다는 그는 광고국장이 되면서 더욱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일했다고 덧붙였다.   여러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며 8년간 몸 담았던 신문사에도 변화가 생겨 지금의 CDS크레딧카드 회사로 옮긴 것이 지난 2008년 6월이다.   신문사와 크레딧카드 회사에서 일하며 생긴 그의 지론은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더불어 같이 사는 것이다”며 “사람 관계도 성실히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중서부 한인 낚시회 회장을 지낸 그는 현재 시카고포럼에 참여하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하며 한인 경제를 몸소 체감했다는 그는 “업계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세탁업계는 2세의 유입이 거의 없는 것 같고, 뷰티 서플라이업계는 2세들의 유입이 좀 있는 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인 1세들은 2세들의 교육을 많이 시켰다”며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한인 2세들에게 잘 물려 주기 위한 1세들의 노력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흙 냄새와 풀 냄새, 시골 향내 그윽한 고향집 생각에 사무실에서 화초를 가꾸며, 직접 모종을 심고, 텃밭에서 농사 짓는 것을 즐긴다는 그는 이른 아침마다 공원에 나가 아내와 함께 50분 정도 걷기 운동을 하며 체력 단련과 건강 관리에 힘쓴다. 경기도 안산 출신으로 현재 데스 플레인스에 거주하며 부인 정경자씨와 슬하에 1남(김진영)을 두고 있다. 박우성 위원시카고 사람들 cds크레딧카드 김영산 cds크레딧카드 김영산 시카고 지점장 cds크레딧카드 회사

2022-11-04

[시카고 사람들] 장영조 전 핑크네일스쿨 교장

시카고에 ‘핑크네일스쿨’을 설립하고 운영했던 장영조(53〮사진) 전 교장은 세계 각지서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대학과 군 복무를 마칠 때까지 외국에 나갈 계획을 세워 본 적이 없던 그는 아버지의 적극적인 권유로 지난 1994년 세계적인 호텔전문경영학교 스위스 ‘세자르리츠 호텔학교’로 유학을 갔다.   이후 뉴질랜드에서 어학연수를 끝내고, 파푸아뉴기니에서 카지노호텔 지배인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3년을 마치고 연결된 직장은 몽골 울란바토르에 있는 호텔, 그 곳에서 지배인으로 일을 했다. 그는 당시 여행, 관광, 사업 등 여러가지 목적으로 몽골을 방문하는 세계 각지의 한인 동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 때 배운 몽골어 실력은 불편 없이 통역을 해줄 수 있는 수준이다.   지난 2001년 10월, 학교측의 배려로 스위스에서 못 다한 공부를 마치기 위해 미국 코네티컷 주 하트퍼드 소재 ‘미국 세자르리츠 호텔학교’로 유학을 왔다.   공부를 마치고 시카고 하얏트 리젠시호텔로 온 것이 지난 2002년 5월.   이후 서울 한남동에 있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 배치를 받게 되면서 시카고에서 정착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한인이 경영하는 호텔 정보를 구하던 중 한인TV방송에 보도기자로 취직했다.   기자 생활을 하며 시카고 한인사회에 대해 많이 배웠다는 그는 취재 중 만난 미용학교 강사였던 아내와 전격 결혼했다.   2007년 5월 아내와 함께 파크릿지에 첫 네일 살롱을 오픈한 후 글렌뷰, 알링턴 하이츠, 시카고 등 모두 4곳에서 업소를 운영할 정도로 비즈니스를 성장시켰다. 지난 2011년 시카고 벨몬트 길에 ‘핑크네일스쿨’도 설립했다.     지난 2년 동안 부동산 리얼터 라이센스를 취득하고, 종합보험업을 할 수 있는 모든 보험 라이센스를 아내와 함께 취득하고 최근에는 새 사업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 보니 시카고는 정말 살기 좋은 곳이다”며 “한국 가기도 좋고 뚜렷한 사계절이 있어 좋고, 다른 대도시에 비해 물가, 교육, 환경 등이 좋고 보수적인 한인사회가 인상적이고 매력적이다”고 강조했다.   서울 출신으로 현재 레이크 취리히에 거주하고 있는 장 전 교장은 아내 한진숙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앤드류, 릴리)를 두고 있다.  박우성 위원시카고 사람들 핑크네일스쿨 장영조 시카고 한인사회 세자르리츠 호텔학교 호텔전문경영학교 스위스

2022-10-28

[시카고 사람들] 한인 문화회관 국중석 부이사장

지난 2018년 가을, 시카고 한인 문화회관과 관계를 맺고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문화회관 부이사장 국중석(80, 사진) 박사.     국 부이사장은 “뒤돌아보니 나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 이젠 남을 돕고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할 것 같다”며 “내 삶의 부족한 봉사 시간을 채우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968년 미국에 장학생으로 유학을 와 켄터키 주 렉싱턴에 위치한 University of Kentucky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첫 직장을 구해 시카고로 온 것이 지난 1975년 8월. 켄터키대학에서 유학생으로 만나 결혼한 아내와 함께였다.   제약 관련 회사에 취직한 그의 전공은 당시 신학문이라 할 수 있는 약제학 분야.   그는 “약물의 흡수, 분포, 대사, 배설 과정을 동역학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예측하고자 하는 학문으로 주류사회에 뒤지지 않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하고 토요일도 근무하며 연구실에서 20년간 열심히 연구만 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지속적인 연구 노력은 선임연구원(Senior Fellow), 수석책임자(Senior Director)로 승진을 할 수 있었고 업계 및 학계에서 인정받는 위치에 설 수 있었다.   일리노이 약사 시험 응시자들에게 강의를 하고, UIC대학에서 1987년부터 2017년까지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한국에 나가 제약회사 자문을 맡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는 미국제약학회(American Association of Pharmaceutical Scientists/AAPS) 창립멤버로 협회 발전에 기여한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27년간 일했던 회사가 다른 대기업에 인수되면서 회사를 옮겨 8년을 더 근무하고 은퇴했다.   지난 2017년 투병 중이던 아내(고 유혜란 박사)를 먼저 떠나 보낸 그는 슬하에 1남1녀(David, Lisa)를 두고 있다.   전라북도 익산 출신으로 지금은 1992년 아내와 함께 설립해 운영해 온 유전자 분석회사, ACGT, Inc.를 경영하고 있다.   몰튼 그로브에 있는 사랑나눔제자교회에 출석하며 노스브룩에 거주하고 있다.  박우성 위원시카고 사람들 문화회관 부이사장 문화회관 부이사장 한인 문화회관 제약회사 자문

2022-10-21

[시카고 사람들] 미 중서부 6.25참전 유공자회 박종민 회장

한국 6.25참전 국가 유공자회 미 중서부지회에서 지난 2017년부터 부회장을 맡았다가 올해 총회서 회장을 맡게 된 박종민 회장(87, 사진).   그는 “제가 회원 중 막내입니다. 많은 회원들이 떠나고 나이가 들어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저 원로 선배들을 위해 심부름이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회장직을 넘겨 받았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지난 3년간 노인시설에 있던 많은 회원분들이 돌아가셨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장례식에서 대통령 근조기와 영구용 태극기를 관 위에 덮는 관포식 행사를 치르지 못해 마음이 아팠다”고 덧붙였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당시 중3이던 그는 길에서 경찰에 강제로 징집 당해 군대에 가게 됐다. 영국군 29여단에 배속됐지만 총을 잡기에는 어려 식당보조, 보급지원 등의 일을 하는 군무원으로 근무했다.   1951년 4월 임진강 남쪽에 주둔하고 있던 그의 소속부대는 한국전쟁 중 영국군의 희생이 가장 컸던 중공군과의 감악산 설마리 전투를 치렀고 그는 전쟁 포로가 됐다.   평안북도 벽동에서 2년6개월간 포로로 지내던 중 1953년 8월 포로교환협정으로 남한으로 돌아오게 됐다.   이후 50세 때인 지난 1985년 10월 가족초청으로 시카고에 이민을 왔다. 시카고 근교 칼루멧 시티에서 1988년부터 세탁소를 운영했다는 그는 “한 눈 팔 시간이 없이 그저 일만 했다”고 회상했다.   한국에서 중소기업을 다닐 때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던 그는 1968년 전국사진대회에서 특선을 하면서 자동으로 한국사진작가협회 정회원이 된 경력이 있다. 그러나 빠듯한 이민 생활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엄두를 못 내고 카메라를 그저 꺼내서 만져보고 다시 챙겨 놓으며 기다리다 야속한 세월을 보냈다.   성정하상 성당에 출석하는 그는 은퇴 후인 지난 2008년에야 한국학교 운영기금 마련을 위한 첫 번째 사진전을, 2015년 한인 문화회관에서 두 번째 개인 사진전을 가졌다.   그는 “시카고는 친근감이 있는 곳으로 사계절이 뚜렷하고 한국과 비슷한 기후가 좋다”고 말했다. 박우성 위원시카고 사람들 유공자회 중서부 박종민 회장 25참전 유공자회 한국사진작가협회 정회원

2022-10-14

[시카고 사람들] 국제무역인 존 리 사장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의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사업가 존 리(47, 사진) 사장.   뉴욕으로 유학을 와 아내와 함께 6개월간 지내던 그가 깨끗한 다운타운과 좀 더 보수적이고 안전한 도시라고 느낀 시카고에 온 것은 지난 2000년 10월.   시카고 한인타운 로렌스 길에 위치한 잡화도매상에서 일하며 본격적으로 미국을 배웠다. 지도를 보고 직접 운전하면서 타 주 출장을 다니던 그는 도로 정비가 잘 되어 있는 미국의 인프라에 감동하며 유통 비즈니스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사장은 “각 지역을 방문하면서 한인 상인들을 만나 말 상대가 되어 주고 한국 신문도 갖다 주며 시카고 정보도 전해줬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 지역의 다양한 비즈니스 뉴스와 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태권도 사범, 스시 딜리버리맨 등 다양한 일을 경험했던 그는 하루 5시간 만 자면서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도 했다. 중앙일보 근무 당시 부동산 경기가 좋은 점에 착안, 리모델링 등을 통한 부동산 사업에 나서기도 했다.     이후 종자돈을 마련한 그는 2007년 2월 서버브에 있는 식당을 인수, 전문 일식 집으로 전환해 본격적인 요식업에 나섰다. 무엇을 하든 일류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사업 목표는 열심히 신메뉴를 개발하고 고객들의 리뷰가 좋아지면서 서버브 지역 최고의 식당으로 성장시켰다.     레스토랑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면서 사업 다각화를 준비하던 그는 오래 전부터 구상하며 노력해 온 사업들을 차례로 실행했다. 2008년 미국 내 월그린 전 매장에 물건을 공급할 수 있는 ‘Nationwide Walgreen Vendor’가 됐다.     중국에서 OEM방식으로 제작한 자체 브랜드 휴대폰 액세서리를 공급하며 국제 무역인이 되고 싶다는 첫 번째 꿈을 이루었다.   그는 “사업가로서 이름이 아닌 저의 브랜드를 세상에 남기고 싶다”고 말한다.     지난 2014년 인도에 진출해 정수 사업으로 주목을 받은 그는 IT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인도에서 독자적인 앱 개발을 위해 현지 사업 파트너와 지분 참여로 소프트웨어 회사를 인수, 운영 중이다.     미국에서 트레이드마크 3개, 특허권 6개(디자인 2개, 유틸리티 4개)를 갖고 있는 그는 지금도 새로운 분야에 끊임없이 개척, 도전하고 있다.   레스토랑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서빙 로봇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2020년 회사를 설립, 본격적인 시장 개척을 하고 있다.     경기도 출신으로 현재 Hawthorn Woods에 거주하며, 아내(제니)와의 사이에 1남1녀(브라이언, 클레어)를 두고 있는 그는 사업 외 시간은 무조건 가족과 함께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박우성 위원시카고 사람들 국제무역 사장 부동산 사업 레스토랑 사업 사업 다각화

2022-10-07

[시카고 사람들] 싱싱실버대학 교감 유재오 장로

100세 청춘 싱싱실버대학 교감 유재오 장로(66, 사진)가 도미해 처가 식구들이 살고 있는 시카고로 이민 온 것은 지난 1984년 9월.   이민 초기에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향수병에 젖어 종종 이민 보따리를 싸고 풀기를 반복하며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시카고 트리뷴을 보고 길을 헤매며 어렵게 찾아 간 미국 공장에 취직해 3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던 그는 라디오 한국방송으로 옮겨 아나운서 및 기자로 활동했다.   하루 일과를 아침 7시 출근해 시작했다는 그는 당시 한인사회는 왕성한 움직임으로 뉴스 취재가 많아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한다.   그는 시카고 이민 동포사회의 일원으로 시카고 한인이라는 취지를 갖고 각 한인 언론사 기자들과 함께 기자협회를 만들고 회장을 맡기도 했다.   지난 1992년 여행사서 경력을 쌓은 아내와 함께 한인 여행사를 인수해 사업을 시작했다.   한인사회 인구가 늘고, 경제 규모도 커지면서 여행업계도 나날이 성장, 1999년에는 시카고 한인타운 링컨길에 있던 여행사를 나일스 골프길로 이전했다. 그 무렵 크루즈 성지순례 여행 프로그램을 내놓으면서 큰 호응을 받았다. 시카고는 물론 애틀랜타, 필라델피아, 뉴욕 등 타 지역 교회에서 요청이 들어 올 정도로 인기 상품이었다고 한다. 그는 “성경책을 보듯이 학습 효과에 도움이 되도록 사명감을 갖고 정성으로 여행 책자를 직접 만들어 참가자들에게 보고, 배우고, 느끼는 여행이 되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커뮤니티 활동에서 만나 그의 멘토가 된 한 단체장의 권유로 한인 기독실업인회(KCBMC)에도 참여했다. 회장을 맡은 그는 시카고에서 북미주대회를 개최하는 등 봉사를 하면서 더욱 더 겸손한 봉사를 배웠다고 강조했다.   그는 “팬데믹으로 중단됐던 싱싱실버대학의 재개강을 준비하는 동안,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다”고 말한다. 이어 “재학생들 모두가 직접 나서서 도움을 주셨다”며 “봉사의 참 맛을 알게 되어 이제는 봉사의 열정이 삶의 중심이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청년 시절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지켜 보며 현장에 있었던 그는 전남 광주 출신으로 광주대학교(공업경영학 전공)를 졸업했다.   현재 레익뷰 한인장로교회에 출석하며 아내(유은주씨)와의 사이에 시카고 경찰인 일한과 익한,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박우성 위원시카고 사람들 싱싱실버대학 유재오 유재오 장로 청춘 싱싱실버대학 시카고 한인타운

202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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